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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서 자라는 가지처럼 오늘 저녁, 산책길에서 우연히 한 그루의 나무 앞에 멈춰섰다.거친 껍질로 덮인 나무 기둥 옆에, 눈에 잘 띄지 않는 밑단에서 잎을 틔우고 있는 작은 가지 하나가 나를 오래도록 붙잡아두었다. 위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더 높이 자라난 굵고 곧은 가지들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런 가지를 보고 ‘잘 자랐다’, ‘성공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 건, 그 아래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조용히 자라고 있는 그 작은 가지였다.물조차 잘 닿지 않을 것 같은 낮은 위치, 햇빛도 겨우 비스듬히 스치는 자리.그런 곳에서도 초록 잎을 피우기 위해 애쓰는 그 생명력에 마음이 울컥했다.  요즘 우리는 너무나 쉽게 누군가의 인생을 평가하곤 한다.스펙이 얼마나 높은지, 연봉은 얼마인지.. 2025. 4. 11.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나를 칭찬하며 오늘 저녁, 동네를 한 바퀴 천천히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시간 약속을 잘 지키며 살아온 내 인생, 참 괜찮았구나.’ 나는 약속 시간에 늦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늘 미리 도착하는 쪽이다.학창 시절엔 친구들보다 일찍 나와 운동장 한쪽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보곤 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회의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해 커피를 한 잔 내려놓고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그저 습관처럼 지켜온 일이었는데, 오늘 산책길에 발걸음을 맞춰 걷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난 참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야. 그래서 난 믿음이 가.” 스스로에게 한 말에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그렇구나, 누군가에겐 나의 ‘시간 약속을 지키는 태도’가 ‘신뢰’로 다가갈 수 있었겠구나. 돌아보면, 시간 약속을 지키는 건 단순히 시계 앞에.. 2025. 4. 9.
봄날의 운동장 한가운데서 오늘은 정말 봄이 절정에 이른 날이었다. 어제까지 비가 왔나 싶은 착각이 들 만큼, 맑고 따스한 햇살이 온 세상을 환하게 비췄죠. 오후엔 문득 아들과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너무 오랜만에 마음이 먼저 움직였던 것 같다. “우리 운동 좀 할까?” 하고 꺼낸 말에 아들이 두 말없이 대답하더군요. “좋아, 아빠!”  집 앞 공터로 나가 축구공을 차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제가 봐주듯 공을 찼지만, 점점 아들의 발끝에서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그 작은 키로 어떻게 이렇게 세게 찰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제 쪽으로 날아온 공이 종종 아찔할 만큼 빨랐다. 괜히 슬쩍 아픈 척 “아야~” 했더니, 아들은 웃으며 “이제 아빠가 나 못 이기겠지?” 하고 으쓱거렸다.  이어진 배드민턴은 거의 박빙이었어요. 제 체력이 점점.. 2025. 4. 6.
봄비 오는 식목일, 오늘도 희망이 자라납니다 오늘은 식목일.그리고 하늘은 봄비를 내려주네요.창밖을 보니 하루종일 그칠 줄 모르고 촉촉하게 내리는 비에 나무들도 기분이 좋은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어요.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마다 연두빛이 번지고, 흙냄새 가득한 바람 사이로 작은 새순들이 얼굴을 내밀었죠. 아마 오늘 같은 날을 기다렸는지도 몰라요. 누군가 말했죠. "봄비는 식물의 웃음소리 같다"고.식목일에 비가 오면, 꼭 하늘이 나무를 심는 날을 축복해주는 것 같아요.물조차 귀했던 겨울을 지나 마침내 찾아온 이 봄비는, 말없이 흙을 적시고 씨앗에게 말을 겁니다."이제 나와도 괜찮아. 춥지 않을 거야. 기다릴게." 가끔은 우리 마음도 씨앗 같죠.차디찬 시간 속에서 움츠리고,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것만 같던 마음밭에도 언젠가는 이런 봄비가 찾아오니까요.. 2025. 4. 5.
착한사람 착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우린 가끔 묻습니다.악한 사람은 뉴스에 나오고, 범죄는 기사로 퍼지는데착한 사람들은 대체 어디 있는 걸까?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있죠.히틀러의 전범 재판에서 나온 말이에요.잔인한 악도, 아주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거죠.정해진 룰 안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했을 뿐이라며, 그는 말했어요.  그런데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악도 그렇게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착함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착한 사람도 늘 우리 곁에 있는 건 아닐까요?  착한 사람은 조용히 삽니다.말보다 행동이 앞서고,누군가를 도와도 드러내지 않죠.이익보다 정의를,비난보다 이해를 선택하니까요.  뉴스엔 나오지 않지만,학교 끝나고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아버지,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학생.. 2025. 4. 4.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마음이 편해지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좋은 사람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알아차리고, 힘들다고 말하면 조언 대신 따뜻한 침묵을 건넨다.  좋은 사람은 내가 잘 나갈 때 박수 쳐주고, 내가 주저앉을 때 조용히 옆에 앉아준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언제나 '옳은 말'보다 '나를 위한 말'을 해준다.그래서 좋은 사람은 꼭 오래 함께하지 않아도 기억에 남고, 멀리 있어도 마음 한켠을 따뜻하게 만든다.    잊지 마세요. 오늘도 당신은 향기로울 거예요.Go together 2025. 4. 2.
아들의 한마디, “건강은 아빠다” 오늘 아내가 아들의 학부모 공개수업에 다녀왔다.작년 가을에 전학 와서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아들이 학교에서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지만, 부득이한 일정 때문에 나는 함께 가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돌아온 아내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안에 내 마음을 적셔주는 한 문장이 있었다.  오늘 공개수업은 국어와 보건 두 과목으로 2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많은 학부모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아이들 역시 부모님 앞이라 더 긴장도 되고,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었을 것이다. 첫 시간은 국어 수업이었고, 두 번째 보건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이 “건강이란 무엇인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아이들이 쓴 문장을 선생님이 하나씩 읽어주셨는데, "건강은 소중한 것이다", "건강은.. 2025. 4. 2.
봄볕이 드는 자리로 화분을 옮기며 4월의 첫날. 캘린더를 넘기며 문득 거실 한쪽에 모여 있던 화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 내내 거실 창가에서 햇살을 받아온 아이들이다. 춥고 건조한 계절을 잘 버텨줘서 고맙기도 하고, 이제 슬슬 베란다로 나가 햇살을 더 가까이 마시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씩 조심스럽게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작고 둥근 다육이, 잎이 풍성한 스파트필름, 그리고 겨우내 조금 시들해 보였던 고무나무까지. 손바닥에 느껴지는 흙의 온기와 식물의 무게가 참 기분 좋았다. 흙이 묻은 손으로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아, 진짜 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에서 베란다까지 몇 걸음 되지 않지만, 그 짧은 거리에도 계절이 담겨 있었다. 거실은 아직 겨울의 여운이 남아있는데, 베란다엔 확실히 봄.. 2025.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