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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아이들과 하와이 여행기(5)

by enduring-fragrance 2025. 3. 8.

 새벽 4시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 시간에 눈을 뜬다. 시차 적응으로 피곤할 뻔하지만 습관이 무섭다. 한국에서부터 매일 이 시간에 일어나 걷는다. 하와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오히려 더 기대가 된다. 이 시간에 하와이 사람들은 뭘 하고 있을지 거리는 어떨지 궁금하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간단히 물만 챙겨 호텔 입구로 나온다. 호텔 사람들은 일찍부터 라운지부터 청소를 한다. 이런 분들 때문에 이렇게 깨끗한 컨디션이 유지가 되는 것이다. 무엇이든 좋은 것들은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의 대가임을 느낀다. 

 

 

 

 길거리가 어두울 줄 알았지만 가로등이 밝혀준다. 혹시나 낯선 장소에서 말도 안 통하는데 무서운 사람들을 만날까 무서울 줄 알았는데 내 염려는 부질없다. 오늘 새벽은 와이키키 해변으로 걸어가려고 한다. 오전에 가족들과 걸어서 이동할 거라서 먼저 길을 익힐 겸 운동 겸해서 경로를 잡았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바로 박스(와이파이 기계)를 켜고 목표지점을 누르고 걷는다. 한국에서는 네이버와 티맵만 사용했는데 외국에 나오니 구글이 좋다. 10분쯤 걸으니 쿠로다 필드공원이 나온다. 새벽이지만 넓게 펼쳐진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다. 하와이 사람들은 이곳에서 일광욕도 하고 휴식도 취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한다. 이 공원에 있는 나무들이 압권이다. 정말 크고 높다. 우리나라에 있으면 아마 보호수라고 푯말이 있을 거 같은데 그런 건 없다. 어제 하나 택시 기사님이 말씀하신 반얀트리다. 제임스카메론 감독이 반얀트리에 영감을 받고 아바타를 제작했다고 하는 게 이해가 간다. 오묘하고 길게 늘어진 가지를 만지면 깊은 영혼의 세계로 연결될 것만 같다.

 

 

 몇 분간 멍하니 반얀트리를 바라보다 서둘러 목적지로 향한다. 와이키키 해변으로 향하는 길은 11자 상권으로 길게 늘어져있다. 양옆에는 각종 명품숍이 즐비했다. 관광객이 많아서 그러겠구나 생각이 든다. 거리는 깨끗하고 이 시간에 꼬마버스 타요에 나오는 청소차처럼 생긴 러비가 열심히 바닥을 쓸고 닦는다. 첫째가 어릴 때 타요를 정말 좋아한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고 괜스레 뭉클하다. 그 아이가 언제 커서 벌써 사춘기 중학생이 되었나 조금 더 크면 한동안은 친구들하고 놀러 다니겠지 하는 생각들이 스친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와이키키 해변으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로 우회전한다. 돌자마자 책에서 봤던 수백 개의 긴 서핑보드들이 세로로 줄지어 나를 사열해 준다. 아무도 없는 이 좁은 길을 난 오늘 처음으로 들어간다. 파도 위를 용맹스럽게 가로지르는 서핑보드 전사들의 사열을 받으며 들어가니 내가 굉장한 사람이 된 듯 기분이 우쭐하다. 하긴 촌놈이 하와이 와이키키를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 감사한 일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윽고 와이키키 해변이 눈앞에 펼쳐진다. 길게 뻗은 해변의 모래는 부드럽게 내 발을 감싼다. 촉감이 좋다. 해변 위의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와이키키 해변 방문을 축복해 주는 불꽃놀이 같다. 어젯밤에 힐튼호텔의 불꽃놀이도 좋았지만 왠지 별들이 만들어주는 오늘이 더 감동적이다. 이따 가족들과 이곳에서 해수욕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조용히 리조트 문을 열어보니 아직 모두 들 자고 있다. 내가 들어온 소리를 듣고 아내는 일어난다. 좀 전에 와이키키 해변에 다녀왔다고 하니 놀란다. 가는 길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따 같이 걸으면서 내가 느낀 걸 느껴보길 바라는 배려다. 그렇게 설레는 하루를 시작하며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챙겨 온 차를 마시며 오늘의 일정을 정리해 본다.

 

 

 

                                               - 6편에 계속 -

 

 

 

 
 

잊지 마세요. 오늘도 당신은 향기로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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